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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밖 청소년과 함께 하는 뉴스레터 독자원고 > 학교 밖 시간이 나에게 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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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밖 청소년과 함께 하는 뉴스레터 독자원고
올 여름이었다. 우연히 서울시 학교 밖 센터에서 진행하는 강의를 듣게 되었다. 그 중 하나는 하우스 강좌로, 개그우먼 김미화 선생님의 일터를 직접 찾아뵈어 그 분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다. 그 날은 찜통 같은 무더위 중 하루였다. 나와 아이들은 연신 손으로 부채질을 해가며 앞에 서 계신 김미화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퍽 힘들었지만, 그 어지러운 더위 속에서도 김미화 선생님이 하셨던 이 말씀이 유독 기억에 남아 있다.
“여러분,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뭐가 중요할까요?”
각종 대답이 쏟아졌다. ‘포기하지 않는 거다’, ‘좋아하는 걸 찾는 거다’, ‘화장실에 가고 싶다’ 등…. 가만히 듣고 계시던 김미화 선생님은 눈을 반짝이며 이내 대답하셨다.
“여러분 스스로를 사랑하는 거예요.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요, 자기 자신을 어마어마하게 사랑해야 해요.”
그 말씀은 아직도 여름의 더운 풀 냄새와 함께 내 기억 속에 강하게 남아있다. 사실 무얼 하더라도 스스로를 믿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모두 소용없는 일들이 될 것이다. 나는 깊이 공감했고, 내가 선택한 길임에도 큰 확신이 없었던 나의 십대를 떠올렸다.
나는 오랜 기간 학교 밖 청소년이었다. 어떤 대단한 포부나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아니, 어쩌면 그 순간엔 대단한 이유라고 생각했던 지도 모른다. 그러나 학교 밖의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처음 마음 굳혔던 확신과 믿음들은 점차 얕아져갔다.
하루는 더 많은 공부를 하기 위해 나온 내가 자랑스러웠고, 하루는 그저 도망쳤다는 생각에 끝없이 괴롭기도 했다. 사실 학교를 다니나 다니지 않으나 ‘나’는 똑같은 존재건만,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는 이유로 내 삶에 자꾸만 납득해야 할 일말의 이유를 갖다 붙여야 했다. 가장 빛나고 예쁠 시기에 소속되지 못하고 혼자 있는다는 것은 그런 의미였다. 이 생활을 남들보다 의미 있게 만들지 않으면 안 되는 어떤 불안감 같은 것. 하지만 나는 고작해야 열일곱이었고, 의미 있는 삶을 만들어 보기엔 너무 서툴고 또 어린 나이였다.


여행을 다니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내가 또래보다 많은 건 시간뿐이었기에 막막한 자유에 지칠 때면 무작정 집을 나와 홀로 국내 곳곳을 쏘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산과 자연을 좋아해 내 속에 은퇴한 노인이 사는 것 같단 생각을 종종 했는데, 그런 내게 도심을 벗어난 한국의 산과 바다, 그리고 끝없는 자연의 경치들은 꽤 좋은 치유와 위로가 되었다. 물론 여행을 다니기 위해선 적지 않은 돈이 필요했다.
하여 나는 친척이 운영하는 어린이집에서 종일 알바를 하기 시작했고, 각종 공모전에 응시해 보았다.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돈을 모은 것이다. 물론 어려운 점도 없진 않았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공모전 중엔 ‘재학생’만을 응시자격에 둔 곳도 있었으며, 어떤 문예지에선 당선을 이유로 수 십 만원의 당선작 단행본 구매를 강요하기도 했다. 어린이집에선 선생님들의 텃새를 견뎠고 집에선 눈치를 받았으며 ‘대체 왜 이러고 살아서 생고생 일까’싶을 즈음엔 돈이 제법 모여 있었다. 국내를 벗어난 곳으로 갈 수 있는 정도였다.
혼자 해외여행을 다니기 시작한 건 그 무렵부터였다. 처음엔 부모님에게 교회 수련회에 간다는 핑계를 대고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 그 후로 열아홉 무렵엔 스페인의 까미노 데 산티아고 순례길을 한 달간 걷기도 했으며 저렴한 항공편을 속속 꿰뚫고 있다가 조금이라도 돈이 모이면 다시 가난한 여행을 떠나길 반복했다. 잠시간 절에 들어가 살아본 적도 있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 몇 걸음만 벗어나도 너무나 다양한 세상과 삶들이 많다는 걸 깨닫게 된 순간들이었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났을 때였다. 나는 혼자 하는 공부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이 대학에 진학하게 된 이유였다. 다시는 평범한 삶을 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어떤 곳에 소속되자마자 나는 놀라운 속도로 일상에 정착할 수 있었다. 어쩌면 그만큼 어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돌아가고 싶을 때 충분히 돌아갈 수 있고 되돌릴 수 있다는 것은 어린 나이의 특권이었다.

그러던 중, 월간 <페이퍼>에서 진행하는 문예공모전에 당선이 되었다. 편집부에선 당선자들에게 취재기를 기고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그 후부터 매달 <페이퍼>에 취재기를 쓰게 되었다. 특정 공간을 찾아가 직접 인터뷰를 하고 그에 대한 글을 쓰는 건 몹시 큰 경험이자 공부였다. 전문적으로 글쓰기를 공부한 것도 아니고, 요절할 천재마냥 선천적인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닌 탓에 여전히 글을 쓸 때면 내가 글을 쓰는 건지 똥을 쓰는 건지 나조차도 헷갈릴 때가 많다. 그러나 그런 모습을 기적같이도 예쁘게 봐주신 편집장님께선 그 분이 편집을 맡고 계신 "해피투데이" 라는 또 다른 잡지에 취재 원고를 써보겠냐는 제안을 주셨다. 마다할리 없던 나는 그 잡지에도 글을 기고하기 시작했고 어린 시절부터, 나는 ‘말로만’ 작가가 되고 싶고 ‘말로만’ 원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었다. 그러나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으며 그런 마음가짐을 유지하는 것도 때론 힘들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처럼 십대의 경험들과 지금의 많은 활동들로 인해 나는 점차 글을 쓰겠다는 꿈을 확고히 굳힐 수 있게 되었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하며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나름의 답도 찾아갈 수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건, 단순히 ‘하고 싶은 걸 한다’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당신의 인생이 당신의 것이라는 뜻이며, 김미화 선생님의 말처럼 당신이 당신을 어마어마하게 사랑하고 있다는 뜻이다.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고 내심 기가 죽어있던 나의 십대가 떠오른다. 그러나 나는 내가 그 시기를 통하여 남들이 경험할 수 없는 경험들을 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았다는 점은 끝내 간과하고 있었다. 혹 기회가 되어 십대의 내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면, 이젠 그 아이의 등짝을 내리치며 호쾌히 말하고 싶다. 지금 너는, 정말 어마어마하게 잘 하고 있는 거라고.
그러니 가장 중요한 건, 무얼 하느냐가 아니다. 그걸 하고 있는 스스로를 사랑하고 인정하느냐는 것이다. 나는 이제야 그것을 깨달았다. 여러분도 그러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