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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밖 청소년과 함께 하는 뉴스레터 독자원고 > 나 자신의 선택의 고통과 행복,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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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8
고2 때 처음으로 대안학교로 옮기면서 위탁교육을 받았다. 학교 부적응해서도 아니었고 학교에서 사고 쳐서 온 것도 아니었다 오로지 나의 선택으로 오게 되었다.
빡빡한 학교스케줄 내에서 지쳐가는 내 모습이 싫었고 내가 앞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 알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고2때는 어려운 가정사로 인해 대안학교행사나 캠프에 많이 참여하지 못했고 여러 가지 경험은 무슨 그냥 가정에 집중하는 내가 되어버렸다. 나는 하고 싶은 거 많고 꿈 많은 아이였다 또, 이러려고 대안학교 온게 아니었다. 그렇게 무의미하게 고3이 된 나는 갑자기 무서웠다. 본교에 있는 친구들은 다들 열심히 공부해서 뭐라도 하려고 하지만 그에 비하면 나는 좀 자유로운 대안학교 안에서도 또 한 번 위탁 온 목표를 잃고 놀았기 때문이다.
여러 생각들을 하면서 이러다간 아무것도 못하겠다는 생각에서 멈춰 섰다. 난 예체능 쪽에 관심이 많다. 유치원 때 일까지 다 기억나는데 재롱잔치를 하면 무조건 내가 주인공이여야 했고 가운데 서야했다. 우리 나이 친구들이 해야 했던 무대들에 난 절대 빠진 적이 없었다. 교회에선 항상 찬양에 맞춰 춤을 췄고 찬양 팀 해서 노래도 부르고 연말 행사 때는 뮤지컬도 했었다. 초등학교 때는 방과 후 특별활동으로 댄스반을 수강했고 중학교 땐 춤 학원도 다니고 실용음악 보컬도 배우고 성악도 배웠고(나의 약한 의지에 거의 다 한달만에 그만뒀지만) 학교에 동아리 밴드부 댄스부도 개설해서 운영했었다. 그렇게 태어날 때 부터 뼛속 유전자까지 난 노래해야했고 춤춰야했고 연기해야했고 사람들을이해하며 이끌어야했고 튀어야했다. 하지만 클수록 주변상황과 사람들의 억압에 난 많이 위축되었다.
고3이 되어서 무서움이 들었을 때 난 예체능 쪽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고2때 포기했다. 그래서 그다음으로 관심있었던것들 역사나 교육 심리 상담 관광 이런 것들로만 대학을 알아봤다. 하지만 내주는 무대에 서고싶고 무엇인가를 만들어내고 싶었다. 그렇게 쭉 1학기가 끝나갈 무렵 대안학교 선생님께서 인턴십에 대해 공고를 해주셨다. 친구들은 서로 하겠다고 난리였지만 난 관심없었다. 어차피 난 바쁜 엄마아빠 대신해 쌍둥이동생 돌봐야하니까 시간없어 하고말이다.
그런데 공고 종이를 문에다 붙혀놓으셨었는데 그냥 지나가면서 슥 보게된 글자가 연기였다. 다시 후진에서 처음부터 쭉 읽어보았다 그리고 선생님께 가서 내가 처한 상황들과 내마음은 하고싶다 는걸 얘기나눴다. 근데 선생님이 “나같았으면 나중에 후회할 꺼 한번 해보고싶다” 라고 하셔서 마음먹고 될지 안될지도 모르고 연기쪽에 지원해주시는분이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희망을 가졌다 사실 될거라고 생각했다. 이제 생각해보니 무슨 근거없는 자신감이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선생님께서 알아보시고 한군데 있다고하셔서 바로 지원서쓰고 자기소개서 쓰고 보냈다. 그러길 2틀인가 기다리니 몇명 뽑지않는 인턴십 인원에 내가 들어갔다. 뽑힌 것이다. 그리고 엄마아빠도 대안학교 부모님들 회의때 얘기가 나왔었나보다 갔다 오셔서 나한테 인턴십있다던데 한번 해보지않겠냐고 먼저 권유도 하셨다. 그래서 옳지 하고 더 기쁜마음안고 하게되었다.
6월 첫출근을했다. 밑바닥부터 시키신다고 해서 살짝불안도했지만 앞에서 홍보하고 사람잡는건 불법이라며 안시키셨고 청소부터해서 여러 가지 인터넷작업들 매표보기 조명보기 제휴잡기 등등 여러 가지를 알려주셨다 인턴십 진행하면서 혼난적은 없고 그냥 내 부주의로 인해 조그만 꾸지람 정도 들었었다. 난 칭찬해야 더 잘하는 스타일인데 그걸 간파하신건지 사실 안혼내셔서 감사하기도 했다. 또 내가 가장 어렸지만 가끔은 내가 책임져야할 일도있었고 관객과 매표하는 스텝과 입장도와주는스텝과 극 준비하는 배우분들의 시간약속이 딱딱 맞아야했고 한 작품이 나오기위해선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일해야 하며 스텝들과 배우들의 얼마나 많은 눈물과 땀과 상처가 나게되는지도 알게됬고 제일 중요한 상사에게 이쁘게 보이기위해선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도 잡아냈다. 본교에서 사회시간때 배우는 서비스업이라는게 대체 어떤 것인지 다른 친구들은 교실에 앉아 교과서로 배울 때 나는 몸으로 경험했고 나보다 나이가많아도 극에대한 평가는 냉정하게 해줘야 하는것도알았다. 또한 아 이런사람도 있구나 저런사람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됨과 동시에 사회의 쓴맛도 알게되고 다른 쪽으론 그런 사람들과 이야기 나눠보니 이해할수있게되었다 위축되고 억압받아서 자존감이 낮아졌던 난 다시 예전의 성격으로 으쌰으쌰 하며 나보다 나이많으신 상사분들에게 장난도 치고 재밌는 여러 가지 얘기들도 나눌수 있게 되었다.

여기와서 정말 좋은사람들과 일하고간다 아쉬웠던게 있다면 인터넷 작업할 때 컴퓨터 수가 한정되있어서 스텝분들 다 일하실때면 난 밖에서 청소하고 자리나면 들어오고 했다는거 정도. 하지만 인턴인 내가 감수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무튼 내가 즐겨했던 부업같은 창고에서 샘플포장하기 할인권자르기 등을 포함해 정말 힘들었던 화장실청소 까지 스스로 다해낸 내가 기특하고 뿌듯했다. 나는 본교에 계신 선생님을 만나뵐 일이 얼마 없기에 대학도 혼자찾고 과도 혼자찾고 전형도 혼자찾고 힘들었지만 이곳에와서 같이 고민해주시고 조언해주신 분들이라 더 감사했다. 난 여기와서 무슨 과를 갈지 정했다. 그리고 내 삶을 열심히 살 이유를 알고 힘을 얻었다 나를 알았다. 주변사람들은 고3 정말 중요한시기에 왜 그런 쓸데없는 걸하며 3개월 씩이나 버리냐고 나를 나무랐지만 난 개의치않았고 내가 하고자 했다. 그래서 날 믿고 한결과에 난 만족한다. 중간중간 운적도 힘든적도 많았고 출근하기 싫었던적도 있었지만 이 모든게 지금의 결과를 있게한 과정이라 생각한다.
인턴십 끝나고 이런 긍정적인 결말도 있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사람들과 너무 늦게 친해져서 더 마음을 나누지 못한거같고 더 잘할수 있었는데 더 배울수 있었는데 못한게 많은거 같아서 아쉬움이 너무 많이 남는다. 처음엔 길게만 생각했던 3개월이 훅 지나서 어느새 지나갔다 하지만 더 오래있어서 여기서 더많은 일을 해낸다 해도 끝은 역시 좋은결과와 동시에 아쉬움이 많이 남을거같다. 내가 앞으로 무엇을할건지 여기에 적진 않을거다 나중에 다들 직접 눈으로 확인하실수 있게 노력할거다.
중간에 학교 친구들도 와서 관람했었는데 처음엔 쑥스러웠지만 내가 일하는곳이기 때문에 자부심가지고 일했더니 다음날 멋있었다고 하는 소리들어서 기분좋았다. 떠들지도않고 잘 관람해주고 호응도 잘해준 우리 학교친구들한테 너무고맙고 관심갖고 인턴십하는 장소에 찾와주신 김가현 자칭타칭 클라라쌤과 대안학교 선생님 감사드리고 끝으로 이런 기회 갖게해준 학교밖지원센터와 인턴십업무관련 분들게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인턴십에 지원할수있게 도와주신 대안학교 선생님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 해보라고 기회준 우리 엄마아빠한테 고맙고 그곳에서 나를 케어해주시고 가르쳐주시고 말동무되어주신 임주임님 선생님 대표님 대리님 윤주임님 감사드리고 막내라고 챙겨주고 많이 지나치게 예뻐해주신.. 처음엔 어색했지만 갈수록 친해져서 끝엔 왜이제서야 친해졌을까하고 아쉬움많이남긴 우리 배우분들 감사하고 다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