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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밖 청소년과 함께 하는 뉴스레터 독자원고 > 태동 사물놀이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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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8-08
학교 밖 청소년과 함께 하는 뉴스레터 독자원고
태동 사물놀이의 여행
노태동 ( 이룸학교 )
나는 나보다 한 살 어린 남동생이 있는 별다를것이 없는 평범한 초등학생이었다. 초등학교도 1학년 부터 6학년까지 다니고 별다를것이 없었다. 단지 학원을 안다녔을뿐. 6학년때 부모님의 결정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 으로 가게되었다. 이유는 어머니의 친구분께서 같이 가자고 권유를 하셨고 마침 부모님은 너무 바쁘게 사시던 터라 휴식이 필요하셨다. 어머니 친구분이 예전에도 같이 가자고 했었지만 거절했었는데 이번에 또 설득을 하셨던 것이 강력한 동기가 되었다. 그리하여 남아공에 도착해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왜 구지 남아공인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영어를 공용어로 쓰지만 언어가 11개나 있다. 경치도 좋고 자연환경이 아름답다. 공기도 한국보다 훨씬 맑고 땅도 넓다. 세계에서 두번째로 과일을 많이 수출하는 과일수출국이며 흑인,백인,인도인,동양인 등 다양한 인종이 산다. 기후도 너무 춥거나 덥지도 않고 여름은 습하지 않다. 눈은 내리지 않으며 여튼 사람이 살기에는 좋은 나라였던 것이다. 게다가 우리가 정착한 남아공 케이프타운이라는 남아공의 수도가 아프리카의 오아시스로 불릴 정도로 좋은 휴양지 겸 도시였다. 남아공에선 7학년인 중학교 1학년 부터 8학년인 중학교 2학년까지 현지인 학교를 다니며 친구들과 그럭저럭 잘 지냈다. 처음엔 언어의 장벽 때문에 소통도 안됬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말문이 트이고 익숙해졌다. 그렇게 우리가족은 남아공에서 2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여행의 시작
그러던 어느날 풍물인이신 아버지께서 우리가족이 1년동안 사물놀이로 거리공연을 하며 유럽을 여행하자는 엄청난 계획을 추진하셨다. (우리가족은 어머니, 아버지, 남동생, 나로 구성되어있다.) 아프리카에서 유럽까지 가는것이 한국에서 가는 것보다 싸기 때문이기도 하고해서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또 거리공연으로 우리나라의 문화를 세계인들에게 알리고 관광도 하자는 것이었다. 나는 처음 그 제안을 들었을때 기대되기도 하고 한편으론 두렵기도 했지만 덤덤했다. 한국에서 남아공에 가자했을때 충분히 놀랐기 때문에 더 놀라울 것도 없었다. 우리가족 4명의 풍물팀 결성으로 이름을 지어야했다. 이름은 나의 이름을 딴 태동 사물놀이로 하기로했다. 태동이 큰 동쪽이라는 뜻도 있고 여러 좋은 뜻도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부담되지는 않았다.
우리는 여행을 떠나기 전에 공새미 가족이라는 한국전통음악을 연주하며 여행했던 5명 가족의 여행기를 보며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남아공에서 사귀었던 친구들과 한인 가족분들 친구분들에게 작별인사를 하며 여행을 떠났다. 이 때의 나는 중학교 2학년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막 신나서 어쩔줄을 모르고 좋아 죽는 정도는 아니었다.
모로코와 유럽
우리의 루트는 모로코를 출발점으로 스페인으로 건너가 포르투갈 그리고 프랑스, 이탈리아 등을 거쳐 동유럽, 북유럽을 여행한 후 다시 서유럽으로 돌아오는 긴 루트였다. 첫번째로 도착한 나라 모로코. 아프리카 북서쪽에 있는, 한 때 프랑스의 식민지였기도 했으며 국토의 많은 부분이 사하라 사막인 아랍인들의 나라이다. 우리는 모로코의 있는 많은 도시를 여행했는데 그 중 마라케시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또 우리의 첫번째 거리공연이 이루어진 도시기도 하다. 마라케시는 항료 냄새와 많은 시장들 큰 광장과 관광객들이 많은 곳이었다. 이 곳엔 제마엘 프나라고 하는 큰 광장이 있는데 낮일땐 그냥 텅 빈 광장이었다가 밤이 되면 야간식당들과 상점들이 문을 여는 곳이었다. 우리의 첫번째 거리공연은 오후 1시쯤에 이 광장에서 시작되었다. 너무 긴장되고 떨려서 입안에 있는 침이 다 바짝바짝 마를지경이었다. 한국의 전통 연희의상을 입고 숙소에서 부터 나와서 악기를 치며 광장으로 향하는 동안 너무 시끄럽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했다. 많은 관광객들과 모로코 인들이 우리의 행진을 보면서 따라왔다.

길놀이라고 하는 대목인데 기차놀이 처럼 앞사람을 따라간다. 옆뛰기를 하면서 돌기도 한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둥글게 서서 원이 형성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신기한 표정으로 우릴 쳐다보았다.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확 생겨나서 깜작 놀랐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우리 나라 음악을 봐준다니까 고맙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이 대목이 끝나자 많은 박수가 나왔다. 또 앉아서 40분 동안 사물놀이, 앉은반 설장구, 채상 설장구, 채상 소고등 다양한 대목을 보여주었다. 반응도 엄청 뜨거웠다.
이렇게 돈도 벌고 공연도 하고 관광도 하면서 마라케쉬 한 도시에만 16일간을 머물렀다. 그 동안 매일 아침을 차려주고 친절하게 대해준 숙소지기, 모하메드와 정들었는데 헤어지려니 눈물이 많이났다. 아버지는 모하메드에게 아끼던 생활한복 옷을 선물로 주었다.

이렇게 나라에서 나라, 도시에서 도시를 옮겨다니며 거리공연 할 장소를 찾아 40분 동안 공연하고 관광도 하며 싼 숙소, 싼 음식, 싼 교통편만을 찾으며 9개월 동안 24개국을 돌아다녔다. 여행하면서 각 나라의 대사관의 도움을 많이 받기도하고 초정되어 공연하기도 했다. 수많은 일들이 있었고 다양한 문화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전통음악에 세계인들의 반응이 뜨겁다는 것도 알게되었다. 여행 하는 하루하루마다 가치있는 시간이었고 우리나라에 대한 자부심도 커진 느낌이었다. 우리 여행의 장점은 여행사를 끼고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사진만 찍고 휙휙 빠르게 가는것과는 달리 천천히 또 자세히 그곳을 보며 느끼는 점이 좋은 것 같았다.
이런 경험을 하게 해주신 아버지께 너무 고맙고 매일 먹거리를 준비해준 어머니께도 감사 말씀 올리고 싶다. 지금 생각하면 대채 그 많은 짐을 끌면서 어떻게 돌아다녔을까 생각할 정도로 신기하기도 하다. 여행이 끝나고 굉장히 많은 것을 얻은 것 같았다. 여행은 가족을 더 가까이 만들어주는 것 같다. 여행은 한국에서 내가 누리고 있었던 것을 다시금 보게 해주었다. 내가 누리고 있었던 것들, 음식, 옷, 집, 돈을 다시금 보게 되면서 내가 참 부자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며 사용하고 누렷던 것들이 몇몇 사람들은 만져보지도 못할 것을 생각하니 그 동안 내가 불평하고 불만한 것들을 다시금 생각해주게 하였다. 우리 인터넷 속도가 세계 최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좋은 곳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나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우월한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며 부러워했던 내가 이젠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여행을 할때 한국인을 만났을 때에 기쁨은 말로 표현 할 수 없었다.
여행을 다시 가겠냐고 하면 언제든지 가겠다.
지금 나는 한국 학력으로 고등학교 1학년이다. 일반학교는 아니고 대안학교를 다니고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자유롭게 지내고있다. 학교밖청소년으로써의 장점은 일반학교에서는 배우지 못하는 것들을 배울수 있다는 점이다. 부모님으로부터 책으로부터 등등 여튼 자유롭다는 점이 강점인 것 같다. 나는 여행기 말고 딱히 해줄 말은 없다. 그냥 기회가 되면 꼭 여행을 인생에서 한 번쯤은 떠나라는 것이다. 밖으로 나가서 새로운 것들을 접하는 것이다. 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말한 것처럼 하고 싶은 일, 자기가 원하는 일을 찾지 못했으면 계속 찾으라는 것이다. 물론 나도 계속 찾고있다. 남들이 뭐래든 당신의 인생이니까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되는 것이다. 어차피 우린 죽는다. 인생을 싫어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것보다 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사는게 좋지 않을까? 버는 돈이 적든 많든 내가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