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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나를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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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9

첫 번째 여행
11월 12일, 서울시 서대문구에 위치한 <도시속작은학교>에는 다섯 명의 친구들이 모였다. 징거다리 학습과정 여행프로젝트 ‘길 위에서 나를 찾다’의 2차 사전모임을 위해서였다. 모든 여행은 세 번 하게 되는 거라 했던가. 여행을 준비하면서 한 번, 실제로 여행하면서 한 번, 그리고 여행을 다녀와 정리하면서 또 한 번, 이렇게 세 번 말이다. 그 말대로라면 오늘 이 모임에서 우리는, 바로 그 첫 번째 여행을 하게 될 터였다.

다섯 친구의 간단한 자기소개가 있은 후, 고무신샘은 여행에 관한 책부터 읽어보자 하셨다. ‘웬 책이지? 목적지가 삼척이니 삼척에 관한 공부를 하려나?’ 싶었는데, 예상은 제대로 빗겨갔다. 우리가 함께 읽은 책들은, 너무나도 귀여운 영상동화 서너권.
아기가 아기가 / 가겟집에 가서
“영감님 영감님 / 엄마가 시방 / 몇 시냐구요.”
“넉 점 반이다.”
“넉 점 반 / 넉 점 반.”
아기는 오다가 물 먹는 닭 / 한참 서서 구경하고.....(중략)
첫 번째 책은 윤석중 선생의 시에 그림을 더한 그림책 [넉점반]. 몇 시인지 알아오라는 엄마의 심부름을 다녀오는 길, 아이는 동네 구석구석을 구경하다가 해가 다 진후에야 집에 도착해서는 천연덕스레 “넉점반이래”라고 얘기한다. 아이는 달리 새로울 것 없는 동네에서도, 새로운 놀이감을 찾고, 닭, 개미, 메뚜기 등을 구경하며 짧지만 기나긴 여행을 한다. 우리의 여행이 지향해야 하는 바도 그러할 터. 무심하게 걷자면 의미 없이 다가올 길이었고, 호기심으로 바라본다면 무한히 신선하게 다가올 길. 이번 여행에서는 우리가 [넉점반] 속 그 아이가 되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두어 권의 책을 차례로 함께 읽은 후, “여행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라는 말씀으로 고무신샘은 이야기를 마무리하셨다. 이어 우리는, 목적지 삼척에 대해 다시 한 번 되짚어보고, 주요 부분을 나누어 각각의 대장을 정했다. 환선굴은 영서가, 너와집은 서영이가, 관동대로는 민영이가 대장이 되는 거다. 그곳에서 친구들은 그곳의 역사, 문화, 이야기 등 닥치는 대로 다른 친구들에게 설명하고 전달하게 될 것이다. 이제 떠나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진짜 여행은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가슴 한 구석이 꽉 찬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두 번째 여행

11월 18일 오후 1시를 코앞에 둔 시각, 우리는 드디어 삼척에 도착했다. 지난 사흘간 맹위를 떨치던 혹한에, 엄청난 각오와 두꺼운 옷으로 완전무장을 하고 나선 길이었는데, 삼척은 의외로 훈훈했다. 매섭지 않은 날씨에 이렇게 감사하게 될 줄이야. 기분 좋은 얼굴로, 우리를 마중 나오신 봉고차 기사님과 웰컴투삼척협의회 김대용 감사님께 인사부터 한다. 서서히 다가오는 허기를, 즉석에서 결정된 메뉴 ‘짜장면’으로 달래고 지체 없이 환선굴로 향한다.
이미 겨울 외투 잔뜩 뒤집어 쓴 환선굴은 조금은 쓸쓸해 보였다. 평일이기도 해서 길은 꽤 한산했는데, 덕분에 마음에 드는 어느 곳에서든 앉고 쉬고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오가는 수다 속에서 어색함도 서서히 누그러든다. 도깨비 방망이, 생명의 샘, 만마지기 논두렁, 마리아상 등 석회암 동굴이 빚어낸 신기하고도 화려한 장관들을 구경하고 나오는 길, 환선굴 속에서 유난히 조용했던 소영이에게 무엇이 인상적이었느냐고 물었더니, 주저없이 ‘참회의 다리’라고 한다. 참회할 게 많았기에, 그 다리 위에서만큼은 숙연해지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고.

환선굴을 나와 너와집과 굴피집을 차례로 둘러본 후, 차로 이동, 첫날 여정은 신리의 너와마을에서 마무리하기로 했다. 너와마을을 테마로 한 마을이 전체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민박집. 기대했던 시골인심이 아니어 서운했지만, 그럴 수도 있지, 하며 아쉬움은 훌훌 털어 버린다. 까만 하늘 한 가득 총총히 별이 박힌 밤,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장작불에 주먹만 한 감자 열댓 개 넣어두고, 우리는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운다.

둘째 날은 관동대로 옛길을 걷는 날. 우리는 서울촌놈들. 해서 관동대로도 낯설고 옛길도 낯설기만 하다다. 관동대로란 울진 평해에서 출발, 동해를 따라 올라와 대관령을 넘어 동대문까지 920리에 이르는 옛길을 말한다. 이 중 고포~용화리마을 25km 구간이 웰컴투삼척협의회에 의해 옛길 복원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정표 등이 아직은 부족하지만, 오르막과 내리막의 리듬감이 살아 있는, 흙길의 폭신폭신함이 담겨 있는, 시원한 동해의 전망을 간직하고 있는, 아주 아름다운 옛길인 것이다.

하지만 그냥 길만 걷는다면 너무 밋밋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길 곳곳에서 [넉점반]의 아이가 되어 본다. 검은 봉다리 한 가득 관동대로에 버려진 쓰레기를 담아 보고, 바람 시원하게 부는 어느 길목에선 눈을 감고 걸어도 본다. 100년 고송 아래에서는 이번 여행에서 처음 만난 친구들끼리 짝을 지어 사진도 찍어본다. 마을에 닿으면 까치밥 홍시도 따먹고 어느 집 할머니가 삶아놓으신 가마솥 속 메주콩도 얻어 먹어본다.

점심을 먹은 시간을 빼고도 걸은 시간은 꼬박 6시간. 다리는 피곤하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맑은 바람을 많이 마셔서일까. 내일은 여정의 마지막. 삼척의 죽서루와 시립박물관만 둘러보면 다시 서울행이다. 2박 3일이 이렇게 짧았던가. 아쉬움 속에 잠이 드는 이 밤, 숙소 앞 작은후진해수욕장 파도소리가 참 시원하다.
세 번재 여행

“5자평 어때?”
누군가 내놓은 제안. 저녁 먹고 난 뒤로 졸음이 솔솔 밀려오고, 입을 떼는 것조차 귀찮던 하루정리 시간. 이렇게 ‘쿨하게’ 정리하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었다. 누군가 운을 뗐다. “베리뷰티풀” 한 친구가 장난스레 입을 열자 다른 친구들도 생기 있는 감상을 내어놓는다.
“불피다 고생”(장작불 때느라 고생이 좀...)
“별 완전 좋아, 별 완전 많아.”
“바닥 따뜻해, 뜨거울 지경”(숙소 바닥이 아주 따뜻하다는 이야기)
“춥지만 좋아”
“폐교 무서워”(숙소 옆 폐교에 들어간 후의 감상)
“아침에 볼까?”(이제 어서 정리하고 자자는 이야기)
이튿날 저녁엔 좀 더 강도 높게 하루를 정리했다. 단순히 ‘어땠는가’가 아니라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하기. 구체적인 연유를 물으니, 풍성한 답변이 쏟아졌다.
“오늘 박대용 선생님한테 들었는데요, 갈령재 같은 길은 1세대길, 관동대로 걷다가 만난 버스가 다니는 비포장 도로는 2세대길, 국도는 3세대길, 고속도로는 4세대길이라고 말씀하셨는데, 3,4세대길에만 익숙한 도시인인 우리가 1,2세대길을 모두 걸을 수 있어서 더 뜻 깊었던 것 같아요.”
이제 우리는 기사 쓸 준비를 하고 있다. 누군가는 삼척에서의 여정 전체를 주제로 할 것이고, 누군가는 관동대로 옛길에 초점을 맞춰 글을 쓸 것이다. 누군가는 정보보다는 감상에 무게를 둔 에세이형식의 여행기사를 쓸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형식이든 어떤 주제든 그게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그저, 이제 각자에게 놓여진 세 번째 여행, 그 여정이 궁금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