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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회 학교 밖 청소년 온라인 포토에세이 공모전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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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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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 기념 학교 밖 청소년 온라인 공모전에 응모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학교 밖 청소년들을 위해 지속적으로 애정을 쏟아부어주시는 길잡이 교사 분들과 

따뜻한 돌봄의 배움터에서 자신의 고민을 부딫혀 가며 성장해나가는

학교 밖 청소년들의 "자신들의 이야기가" 조금이나마 많은 분들께 전달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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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대박상 : 아름다운학교 류한솔 



안녕하세요. 서울시 광진구 구의동 아름다운학교라는 대안학교에 다니고 있는 류한솔이라고 합니다.

저는 아름다운학교에 5년째 재학중입니다. 제가 이 아름다운학교라는 대안학교에 다니게 된 건 초등학교의 기억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큰 수술을 해서 몸이 많이 힘들기도 했었지만 사람들한테 심한 상처를 받아 다시는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학교를 그만두고 나서 제가 다녔던 방과 후 학교가 생각이 났습니다. 왜냐하면 초등학교 때 다니던 ‘방과 후 학교’가 ‘대안학교’로 바뀐다고 했던 사실을 기억했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저는 바로 찾아갔고, 입학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길잡이 선생님들도 다 아는 분들이라서 더 마음이 편했습니다. 


  그렇게 학교에 입학하고, 적응을 해가던 저는 한 과학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제가 듣는 수업은 아니었지만, 편하게 들어가서 같이 수업도 듣고 선생님과 장난도 치고 이야기도 하면서 친해져 갔습니다. 지금 그 선생님은 제 담임선생님이셨기도 하셨지만, 상담선생님, 그리고 친구이기도 했습니다.그 과학선생님은 바로 지혜민선생님이라는 분이셨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서 그 선생님은 길잡이 선생님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같이 장난도 치고, 여행도 다니고, 공부할 때는 모르는 것도 많이 가르쳐주셔서 마음이 편했습니다.지혜민선생님이랑은 학교에서 진지한 대화보다는 배드민턴이나 탁구, 게임 등을 더 같이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친해지기 어려운 어른들과는 달리 더 친근하고 빨리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인상을 찌푸리시는 일이 별로 없으시고 우리들 앞에 계실 때는 항상 웃고 계셔서 마음이 더욱 편했습니다.


  우리 학교에서는 계절조별여행을 많이 가는데, 지혜민선생님과 많이 갔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눈 오는 날 강원도 영월에 가서 1박2일 촬영지도 구경을 하고 사진을 찍고, 숙박에서 별거 아닌 초라한 반찬으로 즐겁게 밥도 먹고 정말 즐거운 시간들이 많았습니다. 선생님이랑 여행을 같이 가면 선생님께서 노는 것을 너무 좋아하셔서 다 노는 것으로 정하기도 했습니다. 계곡에서 놀기, 바다에서 놀기, 좀비게임하기, 마피아게임하기, 베개싸움 등 선생님이랑 여행을 가면 정말 시간가는 줄 모르는 여행이었습니다.그렇게 여행을 많이 다니고, 학교생활을 하면서 제가 정신을 잃고 쓰러진 적이 많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뇌종양 수술을 3번이나 했기 때문이지요.


  갑작스럽게 쓰러질 때 제 옆에 계시고, 걱정해주셨던 분은 항상 지혜민선생님이었습니다. 제가 도보여행 때 였습니다. 산 같은 오르막길을 걸을 때였는데, 저는 제 정신적으로 괜찮다고 생각하며 걸었는데, 잠시 쉬고 다시 걸을 때 쓰러져서 정신을 잃었습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지혜민선생님께서 괜찮냐고 물어봐 주셨고, 쓰러질 때, 팔을 삐끗해서 군산병원에 갈 때도 걱정하지 말라고 계속 웃어주시면서, 안심시켜주셨습니다. 무사히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먼저 숙소로 돌아갔을 때, 지혜민선생님의 느낌은 정말 편안했습니다. 그리고 감사했습니다. 또, 학습발표회 준비로 학교에서 11시까지 일하고 준비 할 때 쓰러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도 제 옆에는 지혜민선생님이 계셨고, 일어나지 말고, 조금 더 쉬라고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제가 집에서 속상한 일이 있고, 힘든 일이 있을 때에도 꼭 지혜민선생님께 이야기 합니다. 물론 제 말을 많이 들어 주시기도 하지만, “이건 이렇게 해보면 좋겠다. 저건 저렇게 해보면 좋겠다” 라고 조언을 많이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힘들고 속상한 일이 있을 때는 선생님께 상담을 많이 합니다. 예를 들면, 이건 진짜 고민있어서 선생님한테 상담했던 겁니다. “제가 동생이 미용정보고등학교에 전교 1등으로 들어갔는데요, 엄마 아빠가 저는 매일 매일 무시하고요, 동생 1등 이야기만 한 달째 이야기하고 있어요. 저도 고졸검정고시 준비하고, 공부하고 있는데 신경도 안 써줘요. 정말 답답해서 미쳐버리고 죽고 싶어요. 그냥... ”이라고 털어놓았습니다. 그러면 선생님께서는 “죽고 싶다니 정말 고민이 심한 것 같구나. 한솔이도 검정고시 공부로 노력을 하고 있는데, 부모님께서 신경도 안 써주시고 동생만 신경 쓰시니.. 음... 속상한 마음을 부모님이랑 이야기는 해봤니? 말을 못할 것 같으면 속에만 담아두지 말고, 일기를 써보는 것은 어때? 그래도 속에 있는 것을 풀어 낼 수 있잖아?!” 라고 대답해 주십니다. 저는 학교를 다니는 5년 내내 이렇게 선생님과 상담을 하며 마음을 풀고 지냈습니다.  


  제가 이번 2011년 겨울에 뇌종양이 다시 재발해서 3번째 수술을 받았을 때에도 지혜민선생님께서 격려와 응원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한솔이는 이번 수술도 잘 견뎌낼 수 있을 거야. 파이팅!!!”

그 격려와 응원에 힘입어 저는 입원을 했고, 수술방에도 울지 않고 들어가 수술도 무사히 잘 받았습니다. 수술을 마치고 병실에 있을 때도 쌤이 병문안을 와주시고, 영화도 다운받아 오셔서 노트북으로 즐겁게 볼 수 있었습니다. 계속 병원에서 선생님과 문자를 나누며 지루하지 않은 하루를 보냈습니다. 지혜민선생님과의 같이 했던 이야기는 정말 말로도 글로도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길고 소중한 시간입니다. 일반 중학교나 고등학교 선생님들의 딱딱한 모습과는 달리 우리 곁에 계시는 길잡이 선생님들께서는 포근하시고 따뜻하고 즐겁고 다정하십니다. 


그래서 저는 이 소중한 추억을 잃어버리지 않고 계속 나아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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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감동상 : 꿈터학교 박진용



 꿈터에서 저를 도와주는 많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그중에 제가 학교를 포기하지 않고 다니게 해주신 분이 있어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저는 4년동안 학교를 다니지 않고 혼자 집에서만 생활을 했습니다. 오랫동안 학교에 다니지 않아서 그런지, 학교란 곳은 어색했고, 그 속에서 지내는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이 어색했습니다. 그런 저에게 서로 잘 알지도 못하는 아이들이 여럿이 모여 공기나 보드게임을 하며 “하하호호” 즐겁게 떠드는 모습은 신기했습니다. 사실 같이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 동안 혼자 지내면서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 두려웠던 것인지 저에겐 적잖은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러한 부담감에 학교를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가족처럼 지내는 분위기나 빨래며, 식사를 스스로 해결하는 자립생활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번 빠지고, 두 번 빠지고,.. 마음은 불안했지만 예전 습관이 몸에 남아 있어서 나도 모르게 저절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아무런 이유가 없었기에 제 자신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가출은 정말 단순했습니다. 한자노트를 사러간다하고 집으로 가고, 버스를 타고 오다가 졸다가 늦어서 가출하고, 근처 패스트푸드에서 시간보내다가 집으로 가고, 지금 생각해 보면 저도 웃음이 나옵니다.


  그런 제가 뭐기에 홍선생님은 집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처음 학교를 빠졌을 때는 불안하거나 초조하지 않았습니다. 설마 집에까지 찾아올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홍선생님은 가출할 때마다 늘 찾아오셨습니다. 한번은 집에 있으면서 ‘문을 열까? 말까?’ 고민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미안한 마음에 학교를 빠진 날은 집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홍선생님께서 찾아오시는 것이 너무 죄송해서 피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저에게 학교를 빠지지 않게 되었던 사건이 생겼습니다.


  그날도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학교에 가지 않았습니다. 첫날은 날씨가 좋아 야외에 설치되어 있는 텐트에 숨어들어 잠을 청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관리하시는 분이 저를 깨웠고, 한참을 혼나다가 아저씨께서 혹시 가출한 것 아니냐고 해서 정말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나는 아무렇게나 둘러대고 캠핑장을 빠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집 근처에 있는 서울 숲으로 향했습니다. 오카리나를 불기도하고 주변 풍경도 보다가, 졸리면 벤치에서 잠을 잤습니다.

다음날도 똑같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저녁이 되어 잠을 잘만한 벤치를 찾아 잠시 앉아 있었습니다. 온갖 생각에 멍하니 땅을 바라보고 있을 때 옆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뭐하냐?' 설마 하는 마음에 제 옆을 보았습니다. 덩치가 큰 그림자가 보였고, 홍선생님께서 떡하니 서계셨습니다. 그 순간 불안한 마음과 이런저런 생각들로 가득했던 머릿 속이 하얗게 백지가 되었습니다.


  홍 선생님은 아이들과 저를 찾아 오셨던 것이었습니다. ‘아, 이제 죽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홍 선생님은 혼을 내시기보다는 부드럽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 끝까지 찾아낸다고 했지? 나 너 포기 안 해!” 그 후로 저는 가출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1년 전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졌습니다. ‘포기 못해’라는 한마디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홍선생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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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감동상 : 성장학교 별 박찬호



선생님과 걸은 길


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저희 학교에는 정 수미 선생님이 계십니다.

재미있으시고 활기 넘치는 선생님이지만, 까다롭고 꼼꼼하며 전문 분야는 빠삭합니다.


특히 저희 학교에서 사진 수업인 `순간의 미학`을 담당하고 계시는 선생님이 십니다.

그래서 저희학교에서 사진에 대해서 가장 많이 아시는 분이죠.

저도 2011년 2학기에 순간의 미학 수업을 듣기 시작 했습니다.

역시 까다로운 수미 샘, 사진 한 장 한 장 을 그냥 넘기지 않습니다.

`너무 흔들렸어`, `구도를 좀 더 다양하게` ,`이걸 세로 컷 으로 찍어봐`

처음에는 잔소리라고 생각하고 넘어갔죠.


그런데 신기한 일이 생겼습니다.

2개월 째 듣는 날,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이 다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푸른 하늘에 나무를 대조한 사진을 찍었을 때였을까, `나무를 좀 더 가까이, 더 넓게 봐`

라는 말이 이해가 간 것은 그때가 처음 이였을 것입니다.

그때부터 사진에 본격적으로 흥미를 갖기 시작했습니다.

전 제가 찍은 사진에 점점 흥미를 가져나가고, 선생님의 조언에 더욱 귀 기울였 습니다.


이 사진은 저희 정 수미 선생님과 같이 걸은 길입니다.

이 공모전을 하면서도 많은 조언을 주셨죠.

처음 좋은 컷을 찍기 위해 저희 학교 주변을 돌아다니고 엘리베이터에서 도 사진을 찍었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 에 선생님께서 전화가 왔습니다.

그런데 전체적으로 사진이 다 흔들려서 보정을 해도 못 쓰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정말 비참했죠.


흔들린 것 도 인식 못하고 계속 찍고만 있었으니.그래서 다시 선생님과 걸은 이 길을 찍었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사진을 확인했습니다.


흔들림이 없다.

안도의 한숨이 났습니다.

정성들여 찍은 게 보람이 있어 다행입니다.


이 사진을 언제나 저에게 조언을 해주시는 선생님, 정 수미 선생님에게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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