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소식
[공교육교사직무연수] 멘토와 함께하는 5일간의 교육여행 - 세청소년멘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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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공교육교사 직무연수
5강_사회창의를 위한 대안적 교육과정_청소년에게 듣는 교육
강혜미/양지유/서정한(산청간디고등학교 재학생)

세 친구 모두 간디학교에 재학중이예요. 지금은 졸업을 준비하고 있어요.
양지유 학생은 저희 센터에서 인턴을 잠깐 했어요. 지유가 친구 둘을 추천해서 함께 왔어요.
맛있는 빵을 가져온 혜미는 학년 대표로 활동하고 있어요.

가장 평범한, 하지만 솔직한 | 강혜미(간디학교 3학년)
전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가 할려고 했던 것, 느끼는 것이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솔직히 어릴적부터 교육에 대해 고민이 많고 어릴적부터 자세히 알아보고 대안학교에 간 경우가 아니예요.
학교를 그만두고 2살 어린 친구들과 간디학교를 다니고 있어요. 제 개인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할게요.
그래야 지금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거 같아요.
어릴 때
어릴 때는 생각해보면 부모님도 미숙했던거 같아요. 제게는 행복한 가정이 중요했어요.
인생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니깐요. 솔직히 전 어릴 때 행복하지 않았어요.
그냥 평범한 부모님처럼 다 해주셨지만 이상하게 마음으로 뭔가 채워지지 않았어요.
어릴 적 저는 겉으로는 너무 멀쩡했어요. 제가 첫인상이 나쁘진 않아서 교우관계도 좋았어요.
그런데 학교만 가면 피곤한거예요. 친구집에 놀러가서 친구 부모님과 이야기하면 너무 편한거예요. 전 엄마와 가까웠어요.
엄마는 제게 숨겨야 하는 것 까지 다 이야기 하셨어요. 오히려 제가 엄마를 달랬어요. 관계를 맺는 게 참 힘들었어요.
사람을 만나면 관계를 맺는게 아니라 상대를 해야하는 입장이었어요. 내가 돌보고 보다듬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겉으로는 멀쩡했지만 속으로는 참 힘들었어요. 동갑내기 친구들, 동생들과 지내는 게 어려웠어요.
고민의 시작
중학교 2학년 때 감사한 인연을 만났어요. 어릴 때 교회의 목사님을 알게 되었고, 재밌게 성경공부를 했어요.
그 때는 몰랐는데 그 경험이 굉장히 많은 사랑을 받았었던 것 같아요. 감사한 일이죠.
공부를 정말 못했는데 그 이후 공부가 재밌었어요. 뭘 해도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래서 좋은 고등학교까지 입학을 했어요.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해서 야자(야간자율학습)을 하지 못했어요.
뭐가 불안했는지 전 학교를 마치고 돌아와서도 도서관에서 밤 11시까지 공부했어요.
뭐가 힘들었나 생각해보면 공부만 해야 한다는 압박이 절 힘들게 하고 우울하게 했던 거예요.
공부를 하고 있긴 한데 왜 공부를 하고, 뭐가 행복인거지 고민이 되면서 힘들었어요.
처음으로 부모님께 울면서 학교를 못 다니겠다고 말하면서 제 감정이 폭발했어요.
도저히 학교를 나갈 수 없었고, 이유없이 힘들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그 때 폭발했던 게 감사한 일이었어요.
여러 기관을 다니면서 어떤 사람에게 말을 들었어요.
‘니가 힘들만한 상황이다.’ ‘너가 충분히 힘들만하다.’ ‘네 말이 맞다.’ 라는 말을 처음 들었어요.
내게 선물을 주자라면서 휴학을 결정했어요. 1년을 휴학했어요.
전 소소한 행복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마음이 굳어있었어요. 내 감정을 표현하는 게 어려웠어요.
처음엔 과격하게 뭘 던지기도 하고 먹고 싶을 때 먹고 배우고 싶은 거 배우면서 막나니처럼 지냈어요.
전 그 시기가 진짜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내 감정을 제대로 알 수 있는 기회였거든요.
내가 회복하자고 부모님을 괴롭히고 있지는 않은가 보이더라구요. 그렇게 1년이 지났어요.
다시 복학하려니깐 너무 힘든거예요. 이미 새로운 세상을 봤는데 다시 쳐박혀서 공부만 하는 삶으로 돌아가야 하는거지,
고민이 되더라구요. 그래서 학교를 그만두기로 결정했어요. 검정고시를 공부하면서 정말 외로웠어요.
그 때 어디든 친구집단(공동체)에 속하고 싶었어요.
전 대안학교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데 부모님이 어디선가 들어서 간디학교를 알게 되었어요.
시간이 정말 없었어요. 추천서를 받을 시간도 부족했지만 어떻게 해서 인연인지 우연인지, 학교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입학해서도 고민이 많았어요. 나이도 그렇고, 선후배 관계는 어떻게 해야하나.
입학할 때 딱 하나 가지고 간 생각이 있었어요. 내 모습 있는 그대로 보여주자. 라고요.
학교에서 대안교육, 대안? 그런거 관심없었어요. 제가 여기에 들어온 건 관계 때문이고
그 관계는 결국은 나 자신의 문제로 왔어요. 작은 공동체 학교에서 거의 가족처럼 지냈어요.
150명 밖에 되지 않은 학교에서 제 모습을 안보여주기 힘든거예요.
그런 환경에서 제가 많이 보였고, 깨질 수 있었고, 저와 진정으로 관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진로와 정체성 = 간디 생활
이제 3학년이라 다른 친구들 처럼 진로에 대해 고민을 해요. 간디학교에는 개성이 뚜렷한 친구들이 많아서
말 잘하고, 글 잘쓰고, 공감잘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저도 나름대로 저를 찾겠다고 나를 보여주겠다고
내가 할 수 있는 걸 찾기위해 노력했어요. 그러다 빵을 알게 되었고, 빵을 만들어서 친구들에게도 주고 있어요.
지금 제가 빵을 만들고 있지만 결정된 진로는 아니예요.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것 뿐.
전 학교 보다 가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내가 부모를 선택한게 아니잖아요.
제가 여기서 살 수 있게 되었던 것은 ‘인정’이예요. 나를 알게 하는 ‘인정’들로부터 시작되었어요.
내게 보이는 관심과 애정들이 제 정체성을 찾아가는 실마리를 찾아줬어요.
가장 기본으로 돌아가서 나에 대해 인식을 했을 때 제 진로가 시작 되었어요.
모든 상황에서 솔직했구나. 그랬기 때문에 부족하지만 발전할 수 있었구나 라고 생각했어요.
작지만 도움을 줄 수 있고, 관계를 통해서 특별한 삶을 살아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관계가 없으면 의미가 없어요. 사람과 사람이 있기에 삶이 의미가 있는거고. 거기서 행복을 찾게 되었어요.
여러분도 그렇게 행복을 찾아가셨으면 좋겠어요.

간디고에서의 추억 | 양지유
저의 개인적인 성장사를 이야기할게요. 제 기억속에 제 모습은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전개가 되요.
저희 지역에서는 학교 통이라는 게 있었어요. 힘쎈 남자아이는 남통, 빽이 있는 아이는 여통.
4학년 말때부터 서로가 서로에게 주의를 줘요. 그때부터 권력을 배우게 되죠. 전 그런 거 몰랐어요.
담타고, 옥상가서 노는 거 좋아했죠. 어리고 자기 중심적인 아이었어요. 다른 아이들이 좋아하는 게 달랐던 거 같아요.
고학년 중반쯤에 왕따를 당했어요.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어요. 차별하면 안되는 구나.
차별을 하면 안된다는 것도 나쁘다는 것도 몰랐던거예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 배려를 배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배려가 아니라 눈치보는 것을 알게 되었고, 당당함이 없었어요. 제가 영악하진 않았어요.
진정한 친구라기 보다 눈치보면서 노는 거예요. 그 무리 속에서도 또 무리가 갈리고 작당을 하면서 서로 싸워요.
왕따 시켰던 주동자였던 아이가 왕따가 되었어요. 정말 생생하게 기억되요. 놀라웠죠.
중학교를 들어가서 절 드러내지 않고 소심하게 지냈어요.
그러다 친한 친구가 생겨서 정상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이상하게 놀았어요. 2학년 때 까지 행복하게 잘 지내요.
그런데 약간 이상한 낌새가 느껴졌죠. 친구 관계가 조금씩 어려워지는 거예요.
어릴 때 왕따의 경험을 숨기고 풀어내지 못한 상태라 그게 가끔씩 나오는 거예요.
불안한데 왜 불안한지 의문을 품지도 안고 넘겼어요.
어느 무리에 속하긴 했는데 소속감은 없었어요. 서로 진심이 없었던 거죠.
1학년 - 불안함
엄마의 추천에 의해 꿈이 생기겠지라는 기대감과 함께 간디학교에 왔어요.
엄마의 추천에 의해 꿈이 생기겠지라는 기대감과 함께 간디학교에 왔어요.
해외로 여행도 가고, 야자도 없고, 두발 자유이고. 그런 점이 좋았어요.
서류를 통과하고 면접에서도 하하호호 하면서 아무 생각없이 입시를 준비했는데 됐어요.
학교를 들어오니 별천지였어요. 1학년 1학기 쯤에는 별 생각없이 다른 문화를 접하면서 웃고 지냈어요.
그래도 남자친구들과의 관계는 아직은 서툴렀어요. 2학년 때 돼서 원인 모르는 우울함으로 정체기를 겪었어요.
얼굴에 웃음이 없어졌어요. 저와 친했던 친구에게 알게 모르게 상처도 주고. 여전히 따돌림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어요.
학교 급식 먹으러갈 때 함께 갈 친구를 만들어야 하는데 참 어려웠어요.
다양한 많은 활동들을 했는데 전 관계를 중점적으로 보게 되더라구요. 제가 노력하지 않아도 다가와주고
학교에서 농촌으로 농활을 가요. 농촌에서도 공동체 생활을 하죠. 저희는 선생이든 친구든 다 식구라고 불러요.
스스럼없이 사진 찍고 놀고, 남자친구도 사귀어보고, 미술팀에서 활동도 하고, 밴드 공연도 처음으로 해보고,
학교끼리 교류하는 프로그램도 하고, 축제도 기획하고... 정말 여러 가지 활동을 했어요.
돈 없이 노는 법도 배워요. 친구들끼리 카페 가서 상황극 만들면서 놀아요. 학교 다니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사고방식을 배웠어요. 인턴활동, 색다른 수업(책을 읽고 책에서 좋아하는 장면을 실제로 만들어 사진을 찍는),
사회 문제를 생각해보는 수업, 인도로 여행을 가서 다른 문화, 다른 사람들과 만나면서 많이 배웠어요.
2학년 - 불안함이 언제 오고 어떤 형태로 오는가. 알게 됨.
1학년이 지나면서 알게 모르게 조금씩 성장하는 게 보여요. 2학년이 되어서 제가 바뀐게 느껴졌어요.
1학년때는 이유없이 불안했는데 2학년 되면서 누가 의도적으로 관계하지도 않았는데
많은 사랑을 받는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2학년 때 그런 여유가 생겨서 1학년때를 돌아보게 되었어요.
2학년때는 친구들 뿐만 아니라 선배들과도 잘 지내게 되었어요.
학년, 위계질서라는 게 없어서 선배들과 지내는 게 스스럼없이 잘 할 수 있었어요.
제가 조울증이 있어요. 좋은 때는 엄청 좋고, 갑자기 우울해지고. 좋은 기간만큼 우울한 기간이 있었어요.
2학년 때는 학교에 대해서도 정체기가 찾아왔고, 제 감정에 대한 정체기도 찾아왔어요.
중간 쯤. 새롭지 않은데 나에 대해 물꼬가 트이니깐 내적으로는 엄청 복잡했어요.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도 제 자신에 대해 생각하면서는 힘들었어요. 여 선배들에게 마음을 트는 기간이 찾아왔어요.
기숙사를 같이 쓰면서요. 언니들이 말을 먼저 걸었어요. 저도 용기가 나서 언니들을 받아드리기 시작했어요..
관계가 여동기에서 선배로 넓어지고 3학년이 되어서도 많은 걸 느꼈어요. 남자 동기들에게 까지 편안함을 느끼게 되었어요.
공동체 생활에서 계속 부딪히다 보니 연습이 많이 되어 그런 거 같아요.
3학년 불안함의 원인과 해결방법을 알게 됨.
3학년 때는 생각을 많이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사색의 시간을 보냈어요. 학교든 제 자신이든요.
3학년이 되면 학교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해요. 토론의 장을 통해 제 이야기도 많이 했고
그 때가 되어서야 왕따 이야기를 꺼낼 수 있가 불안해 할 필요가 없구나.
날 받아주겠구나. 난 사랑을 받겠구나. 라고 편해졌어요. 간디학교에서의 3년은 나를 돌아보게 한 시간이었어요.
이제는 대입. 부모님이 모두 공교육 학교 교사세요. 요즘은 입시설명회를 다니고 있어요.
가면 저와 너무 상관이 없는 이야기들만 해요. 저만 학생이고 대부분이 학부모고, 교사예요.
아이들은 부모님이 전달하면 수동적으로 듣고 따르겠죠.
60만명 중 3천명에 들어야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갈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막막했어요. 혼란스러웠어요.
지금으로서는 대학은 가보려고요. 뭐든지 해보려고요. 우선 가보고 그만 둘 수도 있으니깐요.
제가 요즘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꿈이 없어서 자책도 하고, 인턴십도 급하게 부랴부랴 했죠.
그러다가 서머힐 학교에 대한 책을 봤어요. 놀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배우는 교육이 신선했어요.
다른 학교에 다니다가 서머힐에 온 아이들이거짓된 공존함과 꾸며진 목소리로 선생님을 대한다는 거예요. 충격이었어요.
저도 그랬던거 같아요. 아버지가 엄격하셔서 예의나 웃어른 공경해야한다고 배웠어요.
제게는 오히려 독이 되는 교육이었어요. 다가가기 어려웠어요.
이걸 어떻게 생각하고 깨야 하는 거지.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은 뭐지 하고 싶은 게 뭐지.
무슨 직업이 아니라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 진로에 대한 생각이 사람들에 대한 교육으로 관심을 옮겨진거예요.

진정한 배움을 찾아서 | 서정한
제가 4기 졸업생 중에 정말 싫어하는 사람이 있어요. 저를 불편하게 만들어요. 그래서 싫어하는데.
교사는 말을 많이 해야 하는 직업이라 책임이 많이 져야해요. 그렇지 않은 것 같아서 힘들어요.
저도 간디학교에 다니면서 말을 많이 했어요. 그 말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생각에 요즘은 말하는 게 정말 어려워요.
감동없는 공부
저는 두 친구들과 다르게 학교나 대안교육이나 사회에 대한 고민을 많이해요. 초등학생 때 진짜 잘 놀았어요.
공부도 안하고. 산이나 계곡으로 놀러 다녔어요. 중학교 올라가기 직전에 친구가 학원에 같이 다니자고 해서 갔어요.
문화상품권 5만원권 준다고 해서요. 학원을 다니면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어요. 머리가 좋았나 공부를 잘 했어요.
성적도 올라가고. 부모님도 좋아하시고. 선생님들도 인정해주고. 그게 좋아서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그러다가 학원에서 받은 문제집을 학교에서 잃어버렸어요.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여자 아이가 그걸 들고 간거에요.
그게 충격이었어요. 그 전까지 경쟁이라는거 생각도 못했어요. 그냥 혼자 공부하는거지. 경쟁상대, 이겨야 되고.
어느날 친구가 필기된 노트를 빌려달라고 했는데 순간 불안한 마음에 안 빌려 줬어요. 공부를 잘하고 모범생처럼 살았어요.
아이들한테 대하는게 공부 잘하는 아이와 못하는 아이에게 하는 행동이 다르다는 게 느껴졌어요.
점점 공부가 힘들어졌어요. 다음날 한문시험을 보는데 한문을 못 외워서 밤새 얼음을 얼굴에 대면서 공부했어요.
성취감은 있을지 몰라도 자기 감동이 없었어요.
간디학교에 발칙한 질문을 던지다! - 대안? 그게 진짜 대안이야?
5학년 때 집안이 풍비박산이 났어요. 형이 고등학교를 안가겠대요. 엄마가 마지막으로 대안학교를 가라고 설득하더라고요.
그 말 듣고 저도 가고 싶어서 알아보고 간디학교에 오게 되었어요. 놀 수 있을 줄 알고.
간디에 와서 처음 힘들었어요. 자존감 때문에.
다른 아이들은 기타도 치고, 그림도 그리는데 내가 잘 하는 것도 없고, 할 것도 없고.
그러다 가장 크게 무너졌던 게 수업이에요. 일상적인 생활부분이나 다른 부분은 충분히 공교육의 대안이 되고 있는데
수업은 아닌거에요. 음식 만들고, 옷 만드는 자립성 키우는 수업을 괜찮아요. 공부하는 교과공부는 좀 아닌거에요.
그래서 아이들이 수업에 안들어오고.

제가 활동하는 소리꾼에서 만든 영상이예요. 함께 보실까요. 수업에 전원출석이 힘들어요.
일반학교는 수업에 빠지지 말아야 겠다는 두려움 때문에 가요.
간디학교는 자율성을 기반하기 때문에 스스로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면 수업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요.
2학년 1학기때는 대부분의 수업을 안들었어요. 교사들도 어려워하시죠. 10년동안 대안교육 하셨어도 어려운거죠.
그러다 배움이라는 것은 다양하게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는거예요.
자전거 타는 법을 혼자 배우게 되고 그걸 타고 여행을 가게 되요.
자건거를 수리해야 하니 자전거를 스스로 배우게 되는 거죠. 그렇게 깨닫고 자퇴하려고도 했어요.
자연농업. 4가지를 안하는 게 자연 농업인데 아버지와 같이 하고 싶엇어요. 인도를 다녀와서 마음이 바뀌었어요.
친구들이 너무 소중해서 못 떠나는 거예요. 학교에 정들기도 했고요. 고등학교 자퇴는 정말 큰 결정이예요.
사회에 나가서 고등학교 자퇴자로 살아갈 수 있을까. 무서웠어요. 여러 가지 이유로 자퇴는 못했어요.
배움에 대한 고민은 지금도 못 끝내고 있어요. 간디학교는 솔직히 수업이 힘들어요.
배움에 대한 고민, 끝까지 붙들고 살겠다!
지금 가정 큰 고민은 졸업, 그 이후의 삶이 예요. 간디에서 배운 것들을 내 삶에 어떻게 녹여낼 것인가. 예요.
대안교육이 실질적인 삶에서 대안이 못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대안학교를 졸업해도 다시 사회가 만들어 놓은 틀, 대학에 진학해요.
간디학교를 졸업하고도 특별전형 등의 수시전형으로 대학을 많이 가요. 방문의 날 때 학부모님들이 와서 질문을 해요.
대학 진학률이 어떠냐고. 질문에 대해 실망을 하죠.. 간디학교를 들어오기 위한 새로운 입시경쟁.
입학 원서에 자기소개서를 써야하니 또 다른 스펙을 만들어요. 제주도 가고. 지리산 가고.
간디학교가 15년이 넘었는데 대안적인 삶을 제시하고 있는가 물어본다면 아닌거예요. 나는 그러지 말아야겠다.
대학 포기를 결정해야 해서 어려워요. 지금은 그냥 관심있었던 자연농업을 더 깊게 공부하고 싶어요.
인턴십으로 농사를 짓는 공동체도 가보고 공부하고 있어요. 친구들과 공동체를 만들어 볼까도 생각하고요.
그리고 친구들과 수능 날 대학을 왜 가야하는지 질문을 던지는 놀이를 준비중이예요.
대학 진학을 하지 않고 이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 나갈 것인가 상상하고 구상하고 있습니다.


마무리
오늘 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셨는데 질문 있으시면 해주셨으면 좋겠고, 격려를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저도 상담교사 시절이 있었어요. 고민있는 친구들이 저희집에 먹을 거 먹으러 놀러와요.
그때 오히려 친구들이 와서 제 고민을 들어주고 해결해주려는 거예요. 지금의 시간도 그러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감사합니다.